전 시 명 : Their own perspective :그들만의 원근법
참여작가 : 정광도, 이현호
전시기간 : 2021. 10. 05 (Thu) – 11. 06 (Sat)
관람시간 : 월-토 10:00-18:00 / 일요일 및 법정공휴일 휴관
장  소 :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 20길 3 B2
(*주차공간이 협소하니 대중교통이나 가까운 주변 공영주차장을 권해드립니다*)
문  의 : 02-541-1311 /  info@gallerymar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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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별도의 오프닝 행사는 없습니다.)


그들만의 원근법

새로움, 대상이 아닌 보는 방식

눈앞에 어떤 대상을 본다는 것은, 그것이 발하는 빛을 본다는 것이고 주변에 보이는 것들과의 관계를 파악해 대상에 대한 나의 경험을 반영하여 그 대상과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대상이 지닌 아름다움을 우리가 발견한 것이 아닌 아름다운 관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며, 대상에 아름다움을 입혀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며 소통하고 공감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에 크게 이견이 없는 우리의 보편적 정서는 그 속에 허튼 것 하나 없는 조화로운 생태의 순리를 보고 편안함을 느끼며 평온함이 깃들어서이며,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은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으로 인해 비로소 아름다운 자연인 것이다. 즉 보는 사람-의 시선-이 있어야 그 대상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범상치 않고 특출난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예술가들이 그려낸 예술품들을 볼 때면 그러기에 그 대상에 부여된 보편적인 인식과 인지 너머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을 판단하거나 행동을 취해야 할 때 각각의 기능들이 역할 분담이 되어 질서 있게 작동하는 우리 머릿속 상황은 예술작품을 마주했을 때는 그 기능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해 바삐 서로 교섭하는 과정이 일어나며 그러기에 말로 형용하기 힘든 짜릿함과 마음의 동요가 일렁이는 것이다. 느닷없이 황홀경에 빠지기도, 걷잡을 수 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거나, 절망적이지 않은 깊은 통탄과 슬픔과 같은, 일상에서는 겪기 힘든 낯선 감정들을 맞닥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며 고유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의 작품은 관객에게 단순하지 않고 다채롭고 입체적인 경험과 지식을 불러일으키며 서로 공감의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창작자가 바라본 방식을 우리가 그의 작품을 보며 받아드리는 과정, 작품을 마주한 자의 모든 경험치가 동원되어 그곳에 주파를 맞추는 과정, 이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소통 방식인 예술의 궤도다.

                                  “천재를 만드는 것, 혹은 천재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미 말해진 것이 충분히 말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예술가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아방가르드성이 당연시 요구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서 새로움이란 새로운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독창적인 창작자의 사유에서 나와 작업으로 추출되는 일련의 행위는 그 행보와 작품 자체가 이미 모두 새로운 것이다. 이에 물론 전제되어야 할 것은 독창성을 지닌 예술가여야 하고 그가 가진 자기 신념일 것이다. 즉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창작자는 바라보는 대상이 응해준 시선과 감각을 그의 작업으로 산출하고, 그들이 교감한 방식을 우리는 작품 안에서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에 자연을 소재로 잔잔하고도 온화해 보이는 비슷한 풍경화들이라 할지라도-저마다 다른 방식들로-예상을 뛰어넘는 큰 진폭으로 다양하고 다채롭게 우리에게 비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는 풍경화가 시각예술에서 위치한 뿌리 깊은, 그리고 향후 뻗어 나갈 가능성이 예측 불허한 화수분인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함 : 소실점이 상실된 원근법
 
 한지에 채색이 스민 작가 이현호의 작업은 전통적으로 전해져 온 한국화의 고유한 멋인 여백이 없다. 수려한 경관의 산수를 시원하게 소위 뺀 것,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평온하게 수 놓듯 그려진 것이 우리가 산수화에서 기대하고 느낄 수 있는 큰 매력인데 작가 이현호의 작품에서는 과감히 절단되었다. 그저 빽빽하고 그득하게 화면 안에 들어선 산과 나무들은 비좁아 보이고 시점에 따라 조금은 어색하게도 위치해 보인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기존에 동양화에서 답습되어 온 잘 짜여진 –보기에-좋은 구도라는 것에 오히려 납득도 가지 않았고 피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여백을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보면, 캔버스에 유채로 덮인 작품들에서는 절대적 시점에서 대상을 제압한 안정적인 구도와 연출이 한 눈과 한 번의 시야로 명확하게 받을 수 있는 감동이라면, 어느 특정한 지점 상관없이 그저 어딘가에 시점이 꽂히면 그 흐름대로 시선이 옮겨지며 작품 안에 거하는 듯 황홀한 몰입의 경험을 넌지시 주는 것이 한지 위에 먹이 스민 작품이 주는 감흥이다. 이제는 이러한 구분마저 무의미하도록 다양한 예술적 실천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 다른 매체가 가진 매력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 이현호의 예전 작업은 자연을 소재로 그것에 거리를 두고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표현했다면, 지금의 작업은 자연 그 속으로 들어가 ‘체험’된 자연을 재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관망의 거리 대신 자연 안으로 들어갔다는 그의 감각의 시점과 시선의 변화는 오히려 이른바 ‘한국화 스럽게’ 읽힌다. 여백의 여지 없이 가득한 산과 나무는 빼어난 산세가 아닌 길의 끝 지점이나 막다르고 소외된 장소를 작가의 임의대로 자른 단면이라 여백 없는 화폭에서는 오히려 그 너머를 상상토록 하는 여지를 준다. 복잡하고 난폭한 세상에서 삭막한 소식들로 팽배한 절박한 심정의 우리 상황, 이러한 거친 풍파와는 무관하게 초연하고도 처연히 아름다움을 스스로 고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자연을 바라보며 그 안으로 내재해 시각적·심리적 간극에 대한 불편함을 작가는 빼곡하고 진한 그의 풍경을 통해 타진하고 있다.
특별하도록 예민한 의식이 없으면 딱히 문제도 될 것이 없는, 시각예술에 있어 재현의 방식은 공식화되어 오래도록 세상의 이치를 오롯이 그리고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데 적합하게 전해져 왔다. 주제가 있으면 부주제가 있고 이를 받쳐주는 배경이 있는데 이러한 이치를 평면에 완벽히 구사하기 위해서는 계산된 연출이 필요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해 준 가장 중요한 공식은 원근법이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와 그 외 배경이라는 ‘구분 짓기’가 작가 정광도에게는 내심 내키지 않았던 지점이자 그의 작업의 시작점으로 보인다. 평범한 듯 보이는 정물화에서 출발한 그의 초기 작업부터 그는 ‘중심’에 대한 개념, 그리고 사물들 사이에서의 주제와 배경에 대한 개념과 그의 시선을 어떻게 정립하고 재현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실제 근래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화폭 안에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중심이 잡힌다. 시선의 각도가 각기 다른 두 개 이상의 풍경이 나열되고 중첩되어 있다.

세상에는 다양하고 수많은 본인만의 주제와 중심을 안고 사는 사람들, 각처마다 최우선으로 생각되는 중요한 이슈들이 있는데 조화롭게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같은 생각과 마음이어야 하지만 이는 이상향일 뿐이다. 각기 다른 입장과 중심들이 부딪혀 마찰을 일으키고 팽팽하게 긴장감 서린 상황 안에서 감지되는 불편함을 작가 정광도는 그의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동일하지 않은 그리고 명확하지 않도록 소실점을 상쇄시킨 그의 작업에서는 산만하거나 난잡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도 말끔하게 하나의 화폭 안에 완결시키고 있다. 시점과 공간이 다른 장면들의 병치는 그렇기에 더더욱 이들의 조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그는 이를 중심으로 두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과 시선과 위치를 공존 시켜 이들이 창출하는 긴장의 에너지 혹은 공생을 위한 협력의 흐름이 작가의 작업에서 세세하게 계산되는 그의 원근법일 것이다. 결국, 보는 자의 위치와 시간이 그 장소와 시점을 결론 내린다는 물리적 공식을 작가 정광도는 그의 작업에 원근법으로 대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평면화의 풍경

 창작자의 예민한 통찰력과 비범한 감각으로 광활한 아름다운 자연을 재해석하거나, 뛰어난 예술적 기량으로 극적이고 감쪽같은 소실점을 구성해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평온함보다 훨씬 큰 황홀한 감동을 선사해준 풍경화들은 이미 우리 앞에 많이 펼쳐져 왔고 우리는 마음껏 보아 왔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 앞에 펼쳐진 작가 이현호와 정광도가 그려낸 풍광은 이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그들이 본 것, 보고자 한 것, 내재한 보편적 미를 담보로 이미 수많은 방식으로 재현되어 웬만해서는 새롭기 힘든 소재인 자연을 대상으로 자신들만이 바라본 방식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확신, 이것이 그들이 그려내는 그들만의 풍경일 것이다.

이미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예술적 시선을 담아 내놓은 정신적 상념과 산물들이 포화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다 해먹은 피카소 때문에 더는 할 것이 없다고 자신에게 화풀이했던 잭슨 폴록의 광기 어린 외침에도, 지금까지 태연하게 예술은 인간에게 경이롭도록 새로움을 선사하며 진화해왔다. 예술에 있어 정말 끝 지점, 막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예측할 수 없는 예술의 미래는 늘 그랬듯 상상 이상의 산물이 분출될 것임을 믿는다. 작가 이현호와 정광도의 작품 속 풍경이 외지고 소외된 끝 지점을 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지점은 또 다른 차원으로의 전환으로서 시작점이 되며 이들이 그려낸 풍경의 원근법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몫은 작가 이현호와 정광도의 풍경화에서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이들의 갈증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